막122834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룹명정현구목사님 목회칼럼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참 생명의 조건인데,
이 사랑은 우리에게서 오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우리의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먼저 사랑에 대한 응답일 뿐입니다.
우리들이 독생자를 주심 속에 있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사랑은 찬양으로 예배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우리와 하나님을 사랑의 관계 안에 세웁니다. 이와 같이 바른 사랑의 관계가 영생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대상이 자기로 심히 굽게 되면 ,
자기 주목을 위해,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을 사용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스스로가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고, 그런 하나님일 때 하나님이라고 여깁니다. 즉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이웃 역시 사랑의 대상에서 사용의 대상으로 바뀌어, 자기를 위해 이웃을 이용하고 지배하고 속이게 되고, 나아가 주목을 위해 사용해야 할 물질은 사용의 대상에서 사랑의 대상이 아닌, 숭배의 대상으로 바뀝니다.
수직축이 틀어지면 수평축이 다. 틀어지듯, 프시케 생명에는 이런 뒤틀림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가 육체와 다른 육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육신은 body가 아닌 flesh라고 부른 생명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대상이 바뀌고 순서가 바뀌게 되는 것이 프시케 생명의 특징입니다.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를 알고 믿는 것이 영생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알고 믿는다는 의미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생자의 독유일한, 모노은 자아들를 수식하는 형용사이면 하나의 아들이 되고, lsquo;생rsquo;(게네스)을 수식하는 부사가 되면 하나의 생명이 됩니다.
하지만 영어의 onlybegotten son에서도 보듯이, 독은 자가 아닌 생낳다, 존재하다을 수식합니다. 즉 예수님은 유일하고 독특한 생명을 가진 분이란 의미입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해서 예수님은 그러합니까? 하나님이 성육신 하여 인간이 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교정하려고 했습니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그것은 살만한 한국 기준으로 그들의 행동을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입장을 수정해서 내가 저런 극한 가난 속에 살았다면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했을까를 생각해 보자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준으로 판단하기 전에 말라위 형편의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하마스가 잔인한 테러를 했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힘찬 복수를 하려고 하는데, 만약 자기들이 받은 고난만 크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고 공감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영생을 시편 133편은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하지만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합니까?
이 사랑도 역시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앎으로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 4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나 같은 허물 많은 존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안다면,
허물이 많은 이웃도 사랑할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엄청난 하나님의 주목을 받아 살면서, 이웃에 관하여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배반하는 것입니다.또 내가 이웃에 관련해서 주목을 받을만한 존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내가 이웃에 관하여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앉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 용서를 받은 종의 비유를 통해서,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았다면 이웃의 백 데나리온 빚을 탕감하는 것이 맞다고 하셨습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영생에 관련해서 묻자 예수님은 성경에 어떠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는지 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에게 행복, 만족, 잘 사는 삶에 관련해서 물으면 예수님은 성경을 보라고 하십니다. 성경이 증거로 제시하는 영생은 영혼이 혼자서 이웃이 없고 타자가 없고 혼자서 특권적 낙원에 안주하는 그런 삶이 아닙니다. 육신이 혼자서 프쉬케 생명을 사는 것, 자기 사랑으로 즐기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목을 받아 서로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속에만 참 영생이 있습니다. 이렇게 참 사는 것만이 영구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유사품 영생을 붙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 길을 자기 사랑이란 길에서 찾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길을 통해 참 영생, 조에 라이프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렇게 사랑의 대상이 자기로 심히 굽게 되면
자기 주목을 위해,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을 사용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궁금한 사항은 본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를 알고 믿는 것이 영생의
그래서 독생자를 알고 믿는다는 의미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알고싶으시면 본문을 클릭해주세요.
하지만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떠한 방법으로
이 사랑도 역시 하나님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앎으로 가능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본문을 참고하세요.